'한류 관광' 중심 북촌 한옥마을에 무슨 일이?

 

종로구청, 화동 고갯길 절토·대형 화장실·주차장 공사 잇따라 추진...주민들 "북촌 고유의 모습 훼손" 반발

 

[아시아경제 김봉수·이현우 기자]

 
서울 종로구 화동 고갯길에 붙어 있는 개발 반대 플랭카드.

 

전통 한옥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화동 일대 북촌 한옥마을이 요즘 시끄럽다. 화동 고갯길 절토 사업과 대형 공중화장실 공사, 재동초등학교 운동장 지하 주차장 공사 등 개발사업들이 한꺼번에 추진되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종로구청과 찬성 주민들은 관광객 편의 및 교통 안전, 주차공간 확보 등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입장인 반면 반대 주민들은 북촌 고유의 모습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29일 비오는 오후 화동 고갯길을 찾았다. 최근 종로구청에서 30cm 가량 절토(切土, 흙을 파내고 고개를 깎아 경사도를 낮추는 공사)를 추진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개적인 반대 의사 표시에 주춤해진 곳이다. 이 고개는 겸재 정선이 인왕재색도를 그릴 때 인왕산을 바라보러 올라왔던 역사적인 장소라고 한다. 도로는 2차선으로 차량 교행만 가능한 좁은 도로였다. 정독도서관 쪽으로는 완만한 경사인 반면 반대편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경사가 급했다.

찬성 주민들과 종로구청 측은 "한쪽 도로의 경사가 심해서 고개를 넘을 때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차량이 잘 안 보여 교통 사고 우려가 있다"며 절토를 추진 중이다. 반면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차량끼리의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김관일(50)씨는 "도로 자체도 어린이 안전구역이라 30㎞ 이상 속도를 낼 수가 없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고개를 걸어 올라가니 종로구청이 대형 공중화장실을 추진 중인 터가 나왔다. 종로구청은 도로 절토 이후에 이곳에 10억원 가량을 들여 공중화장실, 관광안내소, 쉼터와 갤러리 등 다용도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 주민들은 "고개를 인위적으로 깎고 공중화장실까지 지어서 북촌 고유의 모습을 훼손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고개를 내려가 주차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재동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11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 학교는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배출한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다. 종로구청과 학교측은 운동장을 파내고 관광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차장과 학생들이 사용할 체육관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학교장이 앞장서서 학부모 설득 등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종로구청 측은 지하주차장 건설비 102억원과 체육관 공사비 52억5000만원의 절반을 부담해주겠다는 카드를 내세워 학교 측을 끌어 들였다. 지하 2, 3층에 6600㎡의 150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짓고, 지하 1, 2층에 900㎡의 실내체육관, 지하 1층에 관광안내소, 전시시설, 공용화장실 등을 만들자는 것이다. 반면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등하교시 위험성도 있고 관광버스가 학교에 계속 출입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여겨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이날 돌아본 북촌 한옥마을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형형색색 우산을 쓴 도보 관광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띠었다. '도성 600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한국의 미를 찾는 이들에게 관광 명소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하다. 사람들이 몰려 오면 차를 댈 곳과 급한 볼일을 볼 곳을 마련해야 하고, 교통 소통이 원활하게 하는 등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이 당연하다. 종로구청이나 찬성 주민들의 생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인 프랑스 파리나 유럽의 도시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주차장ㆍ화장실을 세우느라 지역 고유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훼손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높은 고갯길' 사이에서 바라본 한옥 지붕의 멋이 최고의 구경거리인 북촌 한옥마을의 고갯길을 깎으면, 고색 창연한 한옥들 사이에 생뚱맞은 대형 화장실을 만들어 놓으면, 주차장을 만들어 110여년 전통의 고즈넉한 초등학교를 북새통으로 만들어 놓으면, 과연 그때도 이곳이 한류 관광의 중심지로 남아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한 주민은 "아예 이 곳의 차량 통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이곳을 사람들이 보러오는 이유가 뭔지를 종로구청도 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이현우 기자 b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