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미쳤다, 20년간 뜯고 모으고 짓고…

 

옹고집이 콘텐트다 ② 인천 강화군 ‘담담각(淡淡閣)’ 지동훈 소장

 

지동훈 강화한옥문화연구소장이 20년간 고쳐 늘린 담담각을 둘러보고 있다.
부뚜막이 있는 곳까지가 옛 농가한옥의 터고, 나머지는 증축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새 집인데 새것이 없다. 고재(古材)만을 고집해 집을 고치고, 새로 지었다. 아무리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라도 3년 정도면 공사가 끝나는데 ‘담담각(淡淡閣)’은 완공까지 20년이 걸렸다.

 

인천 강화군 하점면 논밭에 있는 담담각은 1만6500㎡(약 5000평) 규모의 한옥 단지다. 집이 들어앉은 자리가 생뚱맞지만, 주인장 지동훈(47) 강화한옥문화연구소장이 처음 담담각을 만났을 땐 작은 농가 한옥(660㎡)에 불과했다. 지 소장은 1993년부터 어머니가 갖고 있던 이 집을 취미 삼아 고치기 시작했다. 어릴 적 전북 전주의 한옥에 살았고, 미술학도가 되고 싶었던 그였다.

 

 

5000평 규모 대규모 단지 만들어

 

담담 각의 방은 침대가 들어갈 정도로 크다(사진 위),

지 소장이 쉼채 정원에 서 있다.

강화도 자연석으로 돌담을 쌓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담담 각의 방은 침대가 들어갈 정도로 크다(사진 위), 지 소장이 쉼채 정원에 서 있다. 강화도 자연석으로 돌담을 쌓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경영학을 공부해야 했다. 건설업·무역업이 그의 생업이 됐지만 옛 것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 없었다. 담담각은 그의 실험실이자, 꿈의 공간이자, 수집한 골동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됐다.

 

“한옥에 있으면 ‘고래 뱃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바닥에 누워 천장의 서까래와 대들보를 보고 있으면 딱 그런 모양새였고, 그 아늑함이 좋았습니다.”

 

지 소장은 본채의 방 두 개부터 손댔다. 한옥은 방이 작아 침대·옷장을 넣기 벅차다. 그는 “오늘날에 맞는 한옥은 바깥은 원형을 유지하면서, 내부는 현대인이 생활할 때 불편하지 않게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천천히 뜯어고친 결과, 우물이 있던 마당이 부엌으로, 거실로 바뀌며 집이 커졌다.

 

10년간 집을 고치니 자신감이 붙었다. 땅을 더 사들여 한옥 한 채(영빈관)를 새로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이 흐른 올 5월, 인근 고려산에 진달래 축제가 한창일 때 담담각은 안방·사랑방·행랑채·쉼채·주방·거실에 정원 셋을 갖춘 한옥단지로 커져 있었다. 그 옆에 새로 지은 영빈관까지 합치면 전체를 둘러보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는 20년간 줍고 모았다. 소리 좋은 오디오를 놓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쉼채는 원래 경기도 용인에 있는 조그만 절의 본당이었다. 도시개발로 철거될 절을 옮겨놨다. 창고를 겸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에도 해체된 사당 한 채가 있다. 훗날 세미나용 건물로 복구할 계획이다. 영빈관 계단의 장대석은 서울 상왕십리 공사현장에서 가져왔다. 5000평 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돌담은 그의 수집인생의 대표 작품이다.

 

 

철거 위기의 사찰·사당도 재활용

 

 

영빈관 거실 벽면에 놓여 있는 꼭두들. 지 소장은 상여 장식물인 꼭두를 500개 넘게 모았다.

 

 

지 소장은 “돌 구하기 위해 산이며 들이며 무너진 집이며 강화도 구석구석 안 다닌 곳이 없다”고 했다. 고재상을 거치지 않고 20년간 이렇게 직접 발품 팔며 사 모으니, 이제 전국에서 뭐가 철거된다 싶으면 그에게 먼저 연락이 온다. 돈도 많이 썼다. 주한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산하 유럽·코리아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는 그는 “월급 타서 아파트·상가 같은데 투자하지 않고 왜 한옥 같은데 돈을 쓰고, 시간이며 노동력까지 버리느냐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고 했다. 덩달아 왜 그랬냐고 물으니 답이 참 간단하다. “좋아서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 “조금씩 쭉 일했어요. 사람들은 담담각의 규모가 크다는데 수십 년의 세월을 이곳과 함께한 저로써는 규모가 큰지 작은지도 잘 모르겠어요.”

 

공간마다 그의 상상력을 더했다. 담담각 부엌에는 ‘우물 바’가 있다. 기존에 있던 6m 깊이의 우물을 메우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깊숙한 안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지만, 겨울엔 천연 가습기가 된다. 방의 붙박이장 문엔 탱화를 붙여놨고, 상여를 치장할 때 쓰는 봉황·용 장식물을 벽에 꽂아놨다. “한옥이 아파트보다 더 재미있고 편한 공간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강화 돌 모아 담장 … 올해 초 호텔로 오픈

 

그 동안 소문이 퍼졌고, 구경꾼도 많아졌다. 그는 지난해 아예 강화한옥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그간 축적한 노하우를 알리고, 강화에 더 많은 한옥을 보급하기 위해서다. 이런 한옥도 경험해 보라며 연초 담담각을 부띠끄 한옥호텔로 오픈했다. 영빈관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하루 통째로 빌려준다.

 

이제 어떤 직함보다 ‘한옥 전문가’가 어울리겠다고 물었다. 그가 손사래를 쳤다. “클래식도 귀가 트이는데 시간이 걸리듯이, 한옥도 쉽게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아직도 배울 게 너무나 많은 걸요.”

 

 

강화=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