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한옥, 원더풀 서촌" 외국인의 예찬

 

 

 

 

  • 서울시 체부동의 공사 중인 자신의 한옥에서 만난 파우저 교수. "영화 '건축학개론' 처럼 한옥은 우리의 첫사랑이 살아 숨쉬듯 가슴 설레는 향수가 있어요."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13일 정오 서울 경복궁 서쪽 마을인 서촌의 한 골목. 평소 한적하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요즘 웬만해선 보기 어려운 상량식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 행사가 끝나자 여기저기 술과 떡이 돌기 시작했고 구경꾼들은 왁자지껄 집짓기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원했다. 마을 잔치가 따로 없었다.

이날 '파티'를 연 인물은 파란 눈의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51)씨. 2008년 국내 최초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돼 이름을 알린 뒤 지금은 한옥 전문가로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는 "한옥이 좋아 북촌에서 살았지만 급속한 상업화한 마을 모습에 회의가 들었다"며 "서촌의 오래된 가옥을 매입, 한옥으로 개축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월까지 공사가 끝나면 그는 12월 입주할 예정이다.

사실 이곳 서촌은 그가 북촌에 살기 전 머물던 곳. 재개발 바람으로 서촌에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는 모습에 등을 돌려 북촌으로 옮겼지만 그곳마저 공허해지자 다시 서촌을 찾았다. "북촌이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사람냄새'는 점점 엷어졌죠. 북촌의 공허함을 느낄 때마다 서촌 골목이 떠올랐고요."

사실 그는 '몸은 북촌, 마음은 서촌'이었다. 북촌에서 살면서도 옛 모습을 잃어가는 서촌이 안타까워 작년에 서촌거주공간연구회를 만들어 서촌 살리기에 나선 게 대표적인 '증상.' 그는 "시인 이상의 집이 헐리고 재개발 될 위기에 처하자 연구회가 저지에 나섰다"며 "지금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이 성취감은 그가 다시 서촌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이날 자비를 들여 상량식을 치른 것도 한옥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 "88년 한 대학에서 영어강사를 할 때 혜화동의 한 한옥에서 살았어요. 연탄불을 땠고 화장실도 밖에 있고, 샤워실은 없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한국적인 낭만이 그 불편을 압도했죠."83년 서울대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87~89년 카이스트(KAIST)와 고려대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동안에도 한옥을 기웃거린 이유다.

그의 한옥 사랑은 '이주'로 끝나지 않을 참이다. 연구회를 통해 알게 된 전시기획자 최재원씨, 도편수 황인범씨와 함께 서촌의 골목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흐르는 골목-서촌'도 기획하는 등 한옥마을의 아름다움 알리기에 팔을 걷었다. 서울시 지원아래 20일까지 서촌마을 사진전은 공사중인 그의 집에서, 한옥음악회는 통의동에서 열린다. 오프라인과 함께 운용되는 '체부동 프로젝트' 블로그도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곳. "서촌 문화행사가 동네 토박이나 땅 소유자, 어르신, 젊은 층 등이 소통할 수 있는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면, 이 블로그는 옛 것의 상실을 아쉬워하는 세대간의 소통 도구가 될 겁니다. 그러면 서촌 골목을 지켜야 한다는 단단한 끈이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요?"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