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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현황

한옥마을 및 체험업한옥마을 및 체험업

제목 사상마을
주소 전남 진도군 의신면
건물현황
(한옥/비한옥)
한옥 세대수
사업명 살기좋은지역만들기 건축면적 m2
마을소개

살기좋은지역만들기 : 시서화의고장운림예술촌사업

 

 

사천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내가 비껴 흐르므로 비끼내, 또는 빗내라고도 하고, 이를 한자로 사천(斜川)으로 표기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상리와 사하리, 논수동을 합쳐 지금의 사천리가 되었다.

 

진도에서 가장 높고 사천리의 배산을 이루는 첨찰산을 중심으로 수리봉-양미굴-왕무덤재-남산 줄기가 서서남진하면서 북쪽을 감싸고 있고, 덕신산의 앞산 산줄기로 거의 둘러싸여 있다. 오직 출구는 의신천을 따라 내려가는 남서부만이 터진 곳이라 할 수 있다. 앞쪽에는 첨찰산-두무골재-덕신산-앞산 자락이 남쪽 벽을 형성하고 있다. 첨찰산 485m를 필두로 하여 100~300m의 낮은 산지이지만, 마을에선 보면 제법 산세를 보이고 있다. 사천리는 마치 이들 산사에 떠있는 배 모양의 하곡지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자리 잡은 형태이고 그 중앙부에 사상마을이 자리하고, 운림산방과 쌍계사는 마치 배의 선두를 지휘하는 듯한 형국이다. 따라서 진도군에서 가장 뛰어난 산수의 조화를 보이는 이곳이 남종화의 산실이 될 만한 경관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상마을엔 현재 63가구가 빗기내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그중 농가는 38호, 비농가는 주로 쌍계사와 운림산방 주변의 상가 및 식당으로 약 25호이다. 현재 인구는 약 150명으로 이중 남자가 82명, 여자가 68명으로 남자가 더 많은 곳이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평산 신씨이지만 현재의 주요 성씨는 박씨이다. 마을 공동재산으로는 마을회관이 있고, 유물·유적으로는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있다. 주요기관 및 시설로는 운림산방, 진도역사관, 소치기념관 등이 있다. 반면 규모가 작은 사하마을은 총 가구 30가구 중 농가가 28가구로 절대적으로 농업 중심이며, 인구 71명 중 남자가 38명, 여자가 33명으로 역시 남자가 많다. 논이 밭보다 조금 많은 곳으로, 입향조는 민씨와 박씨이고 현재의 주요 성씨는 김씨와 박씨이다. 마을 공동재산으로는 마을회관이 있으며, 유물·유적으로는 왕온의 묘가 있다. 농경지로는 논이 24㎢, 밭이 21㎢로 논이 약간 많다. 이는 계곡을 끼고 있는 관계로 풍부한 용수공급이 가능하여 일찍부터 계곡을 중심으로 논이 발달했다. 밭은 사력질 토양부와, 일부 구기자,대파,월동배추,표고버섯 등 특용작물을 중심으로 하는 밭 경작이 행해지고 있다. 산록부를 개간하여 점차 밭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임야가 상대적으로 많아 526㎢을 이루고 있다. 주 작물은 주로 논에서 쌀을 중심으로 경작하고, 일부는 보리와 함께 2모작 형태를 띠고 있다. 산림을 이용한 표고버섯을 재배하기도 한다.

 

주변 볼거리로는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과 진도 최대 사찰인 쌍계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모두 주차장 등이 잘 구비되어 있고, 주변에 식당과 민박, 상가 등도 10여 채 이상 자리하고 있다. 또 삼별초의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왕온의 묘라고 알려진 왕무덤재가 자리하고 있다. 첨찰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진도아리랑기념비, 첨찰산의 기상관측소와 난·온대림 군락을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KBS TV 프로그램 '내고향 백년 가약'에서 지어준 민속전수관으로, 국악전수실과 짚공예 실습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사천리 마을 부녀자 및 인근 마을 주민들이 ‘다시래기’, ‘진도 북놀이’ 등을 연습하며 전수활동을 하고 있는 체험 공간으로 활용된다. 거기다 비끼내를 따라서 마을 앞쪽에 늘어선 장승행렬 또한 이 마을이 진도에서 가장 살아있는 민속마을임을 느끼게 해준다.

이곳 마을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운림산방은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 제51호로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말기 시·서화에 능했던 남종화의 대가 소치(小癡) 허유(許維) 선생이 말년에 고향에 돌아와 작품활동을 하던 화실의 당호로서, 일명 운림각이라 불리운 곳이다. 이곳에는 허유 선생의 생가, 사랑채, 사당 이외에 2003년 10월 31일 개관한 소치기념관과 진도역사관이 있다.

 

또 다른 지명으로 사천(斜川)은 속칭 ‘빗기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빗기내는 ‘핏기내’의 발음이 변형된 것으로 ‘피가 흘렀던

하천’의 뜻이 있다는 설도 있다. 옛날에 삼별초군이 이곳에서 30여 리 떨어진 용장산성에서 퇴각한 뒤,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 이곳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피가 왕무덤재에 형성된 골짜기에 흘러, 내를 이룰 정도여서 핏기내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출처: 디지털진도문화대전 http://jindo.grandcultur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