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에 ‘한옥의 혼’ 얹은 이 사람

 

건축가 조승원 재조명 전시회

   건축가 조승원
 

전통건축 마지막 세대이자

서양식 건축 첫 세대 활동

옛 서울여상·삼청각·보성고 등

‘온고지신’ 대표 건물들 지어

 

서울 서북쪽에서 서대문으로 이어지는 의주로, 무악재에 이를 즈음 인왕산 중턱에 있는 옛 서울여상·문영여중 건물은 1990년대 초반까지 랜드마크 구실을 했다. 91년 서울여상이 관악구로 옮겨간 뒤에도 기와를 얹은 5층짜리 학교 건물 하나와 팔각정은 그대로 남아 서부수도사업소가 입주해 있다. 이제 아파트들이 건물을 가려 더는 거리의 지표 구실을 못하게 된 이 묘한 건물은 오랜 세월 이 부근 풍경의 핵심이었다.

 

건축가 조승원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옛 서울여상 한식 교사(1965년 작)의 근경.

전통과 근대 건축을 접목한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조승원(1901~1987·위사진). 그는 서울여상 한식 교사(1965)와 팔각정(1969) 외에 베트남 호찌민(옛 사이공) 시내 팔각정(1971), 고급 요릿집인 삼청각과 팔각정(1972) 등 콘크리트 골조를 이용한 다층 한옥을 설계·시공했다. 군산교대 도서관(1953), 서울 보성고등학교 교사(1955), 인천교대 본관(1956), 춘천교대 과학관(1958), 인천교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1959) 등 근대식 학교 건물들도 그가 설계는 물론 시공과 감리까지 한 건물들이다. 한옥을 근대건축에 접목시킨 것이 조승원 건축의 특징이었다.

 

   건축가 조승원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옛 서울여상 한식 교사    
   (1965년 작)의 근경

조승원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던 시기 옛 기법 건축의 마지막 세대이자 새로운 서양식 건축의 첫 세대가 되어 한국 건축의 과도기에 활동했던 건축가다. 이제는 잊혀진 그를 재조명하고 이 시기 건축의 의미와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7월21일까지 이어지는 ‘개항, 전쟁 그리고 한국근대건축’전이다.

 

건축가 조승원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옛 서울여상 한식 교사(1965년 작)의 원경.

평안도 맹산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조승원은 18살 결혼하던 해에 동지들을 규합해 ‘구국청년단’을 조직해 책임자가 되어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 구국활동을 폈다. 19살에 일본 경찰에 체포돼 18개월 동안 복역하면서도 옥중에서 3평 공간에 20명 넘게 수감되는 문제에 저항해 ‘옥중 동맹파업’을 주도했다. 출옥 이후 그가 중국 망명 비용을 마련하려 선택한 일이 목수였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독립운동가의 길을 포기한 그는 본격적으로 건축의 길로 뛰어들었다. 25살에 도편수 한성룡에게 한식 목조 설계를 배운 그는 이듬해 건축설계회사인 ‘대륭조’의 전속 목수가 되었고, 평양 숭실전문학교 강당과 체육관, 정의여학교 교사를 책임 시공했다. 28살 때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전국 선교사업 공사를 맡으면서 근대건축기술 및 설계시공방법을 익힌 그는 1929년 동료들과 설계시공사인 ‘건평사’를 설립해 30년대 말까지 평양 지역 기독교계 건물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조승원이 설계하고 직접 시공까지 한 삼청각 팔각정(위ㆍ1972년 작)

해방 이후 빈손으로 월남한 그는 목수, 양말직조, 상인, 반공무원, 유급 전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53년 군산교대 도서관 및 부속초등학교 설계·감리를 시작으로 다시 설계·시공

일을 시작했다.

건축가 조승원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옛 서울여상 한식 교사
(1965년 작)의 원경.

 

꼬장꼬장한 성격에 설계·시공·감리 등 건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섭렵했기에 그가 맡은 공사는 튼실하기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1961년 그가 회갑을 맞아 집필한 미출간 회고록을 보면 시멘트,

철근을 빼먹거나, 이중장부로 비용을 빼돌리는 건축계의 비리

에 맞선 ‘독립군’을 만날 수 있다.

 

조승원이 설계하고 직접 시공까지 한 보성고등학교 본관(아래ㆍ1955년 작)

최근 찾아가 본 서부수도사업소 건물(옛 서울여상)은 지은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균열 한 군데 없이 잘 버티고 있었다. 5층 콘크리트 건물 맨 위층은 콘크리트 서까래를 걸고 팔작 기와지

붕을 이었고, 층마다 계자 난간(닭벼슬 모양의 난간)을 둘렀다.

건물 뒤쪽으로는 모든 층에 구름다리를 내어 산으로 통하는 길

을 냈다. 교사 왼쪽 바위 위에 지은 3층 팔각정 역시 교사와 구

름다리로 이어지는 모습이 그대로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건축사)는 “조승원은 근대 서양 건축기술 이입사라고 할

수 있는 한국 건축사에서 한국 전통건축과 박래품 근대건축의

조화를 모색한 희귀한 존재”라며 “일찍이 그가 한 고민은 지금

도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글·사진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오른쪽 사진 도코모모코리아 제공